세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후회했던 사춘기 부모의 말 5가지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하는 말에는 대부분 이유가 있다.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부하라고 말하고, 잘못된 행동을 고쳐주려고 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진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내가 하는 말을 어느 정도 잘 받아들였다. “숙제했어?”라고 물으면 숙제를 했고, “정리하자”라고 하면 함께 정리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같은 말에도 반응이 달라졌다.
대답이 짧아지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고, 때로는 “알았다고!”라는 날카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아이가 예민해졌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번 부딪히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알게 됐다.
아이만 변한 것이 아니라 부모인 나도 변해야 했다.
특히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 가운데 아이의 마음을 닫게 만들었던 말들이 있었다.
오늘은 세 아이를 키우면서 지금까지도 가장 후회하고 있는 사춘기 부모의 말 5가지를 실제 경험과 함께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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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0 - [사춘기 부모대화] - 17살.16살 아이와 대화가 잘 되는 부모의 말투, 갈등을 줄이는 7가지 방법
17살.16살 아이와 대화가 잘 되는 부모의 말투, 갈등을 줄이는 7가지 방법
사춘기 아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부모의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릴 때는 “숙제했어?”, “밥 먹어”, “늦지 마” 같은 말을 해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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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는 왜 이것밖에 못 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성적과 관련된 말이다.
시험이 끝난 어느 날이었다.
아이의 시험 결과를 확인하고 나도 모르게 점수를 다시 봤다.
“이게 몇 점이야?”
아이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냥 이 정도 나왔어.”
나는 순간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공부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이것밖에 못 했어?”
말을 하고 나니 아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이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나도 잘하고 싶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미 결과가 좋지 않아서 속상한데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 또 부족하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날 밤 아이 방 앞을 지나가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결국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까 엄마가 너무 결과만 보고 이야기했어. 네가 속상했을 텐데 미안해.”
그때부터 성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시험 결과를 확인하면 바로 점수를 평가하지 않고
“시험은 어땠어?”
“네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어?”
“어려웠던 건 뭐였어?”
라고 먼저 물어봤다.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아이에게 성적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는 경험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 “엄마가 너만 할 때는 더 힘들었어.”
어느 날 아이가 친구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었다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아이에게는 꽤 심각한 문제였던 것 같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내 경험을 떠올렸다.
“엄마도 학교 다닐 때 친구 때문에 힘든 적 많았어.”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이야기했다.
“엄마가 너만 할 때는 더 힘들었어. 그런데 그 정도는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져.”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부터 아이가 말을 하지 않았다.
“왜? 더 이야기해봐.”
라고 했지만 아이는
“됐어. 괜찮아.”
라고 했다.
그때는 내가 위로해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 엄마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부모가 살아온 경험은 분명 소중하다.
하지만 아이의 고민을 부모의 경험과 비교하면 아이는 자신의 문제가 별것 아닌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가 힘든 이야기를 꺼내면 먼저 이렇게 말하려고 한다.
“그 일이 너한테는 정말 속상했겠다.”
“친구 때문에 마음이 많이 복잡했겠네.”
그리고 아이가 충분히 이야기한 뒤에야 필요하다면 내 경험을 꺼낸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것은 공감은 해결책을 빨리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먼저 인정해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3. “네가 알아서 해. 엄마는 이제 모르겠다.”
이 말은 아이와 크게 다툰 날 나왔던 말이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을 계속 미루고 있었고, 나는 여러 번 이야기한 상태였다.
“이제 해야 하지 않아?”
“알았어.”
조금 뒤에 다시 보니 아이는 여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결국 목소리가 커졌다.
“도대체 몇 번을 이야기해야 해?”
아이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다고 했잖아!”
그 말을 듣자 나도 감정이 폭발했다.
“그래. 네가 알아서 해. 엄마는 이제 모르겠다.”
말을 내뱉고 방문을 닫았다.
그 순간에는 내가 너무 지쳐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가라앉자 이상하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이에게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나는 너를 포기하겠다”가 아니었다.
사실은
“엄마도 지금 너무 지쳤어. 네가 내 말을 조금만 들어줬으면 좋겠어.”
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아이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알아서 해”라는 말로 끝내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는 감정이 너무 올라오면 대화를 잠시 멈추려고 한다.
“엄마도 지금 화가 많이 났어. 우리 조금 있다가 다시 이야기하자.”
이렇게 말한다.
아이와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가라앉힌 다음 다시 대화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사춘기 아이와 갈등할 때 모든 대화를 그 자리에서 끝내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4. “너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
세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정말 지치는 날이 있다.
특히 아이들의 일정이 겹치고 집안일까지 몰리는 날에는 작은 일에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움직였는데 아이가 약속했던 일을 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미 지친 상태였다.
“엄마가 이것 좀 해달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어?”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서운함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너 때문에 엄마가 너무 힘들어.”
말을 하고 나니 아이가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내가 그렇게 힘들게 해?”
라고 물었다.
그 질문을 듣고 마음이 철렁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이가 힘들게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날 내가 너무 지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자신의 존재 때문에 엄마가 힘들다는 뜻처럼 전달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감정을 표현할 때 주어를 바꾸려고 했다.
“너 때문에 힘들어.”
대신
“엄마가 오늘 하루 너무 지쳐서 지금은 힘들게 느껴져.”
라고 말한다.
아이에게도 부모의 감정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엄마가 힘든데 아무렇지 않은 척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에 대한 감정과 아이의 존재 자체를 분리해서 말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5. “엄마가 너한테 얼마나 해줬는데.”
이 말은 내가 가장 많이 후회하는 말 중 하나다.
아이를 위해 밥을 준비하고, 필요한 것을 챙기고, 학교와 학원 일정을 확인하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간다.
부모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때로는 너무 지친다.
어느 날 아이가 내가 부탁한 일을 하지 않았고, 나는 서운한 마음이 컸다.
“엄마가 너한테 얼마나 해주는데 이것 하나도 못 해줘?”
라고 말했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이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내 희생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하는 많은 일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 사랑을 아이에게 빚처럼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려고 한다.
“엄마가 오늘 너무 바빠서 힘들어. 네가 설거지만 도와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면 아이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아이에게
“엄마가 얼마나 해줬는데.”
라고 말하는 것보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서로 도울 일을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것이 훨씬 건강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했던 말을 다시 돌아보게 된 이유
이 다섯 가지 말을 돌아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 말들이 나쁜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아이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다.
성적이 떨어질까 봐 걱정했고, 친구관계에서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고, 아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그런데 부모의 의도와 아이가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를 수 있었다.
“너는 왜 이것밖에 못 해?”라는 말에는 부모의 걱정이 들어 있었지만 아이에게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었다.
“엄마가 너만 할 때는 더 힘들었어.”라는 말에는 위로하려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이에게는 자신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었다.
“네가 알아서 해.”에는 부모의 피곤함이 있었지만 아이에게는 포기한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었다.
이것을 깨달은 뒤부터 나는 아이에게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려고 한다.
지금 이 말을 꼭 해야 할까?
아이의 행동을 이야기하는 걸까, 아니면 아이 자체를 평가하고 있는 걸까?
내가 아이를 위해 말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화가 나서 말하는 걸까?
이 세 가지를 생각하면 조금은 말이 달라진다.
사춘기 부모도 실수할 수 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부모가 모든 말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어떤 날은 아이에게 잘 말하다가도 피곤한 날에는 결국 목소리가 커진다.
어제는 참았던 잔소리를 오늘은 참지 못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나쁜 부모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실수한 다음의 행동이다.
아이에게 너무 심하게 말했다면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
“아까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심한 말을 했어.”
“네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너 자체를 나쁘게 말하는 것은 다른데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처음에는 아이에게 사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부모가 먼저 사과하면 권위가 없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도 부모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
그리고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한 번도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싸운 뒤 다시 대화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아이를 키우며 가장 크게 배운 것
아이들이 어릴 때는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이 아이를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이에게 항상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기다려주는 것이었고, 때로는 들어주는 것이었고, 때로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면 다시 다가가 사과하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세 아이는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지만 모두 성격과 생각이 다르다.
그래서 한 아이에게 통했던 방법이 다른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결국 사춘기 육아에는 완벽한 공식이 없는 것 같다.
다만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 필요할 때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모든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말을 하는 부모보다 다시 말할 수 있는 부모
지금도 나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다가 실수한다.
그리고 가끔은 예전의 말을 다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한 말을 돌아본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아이 입장에서는 어떻게 들렸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아이에게 다가간다.
사춘기 자녀를 키우면서 부모가 꼭 완벽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말만 골라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대신 상처를 줬다면 인정하고, 사과하고, 다시 이야기할 수 있으면 된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이 언제든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도,
친구와 문제가 생겼을 때도,
실수를 했을 때도,
부모에게 혼날 것 같아도
“그래도 엄마에게 이야기해볼까?”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한다.
이 말이 아이를 바꾸기 위한 말인지, 아니면 아이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한 말인지.
아직도 매일 배우고 있지만, 세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이것이다.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말이 아니라, 잘못했을 때 다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